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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orary Dance Company

40, 그 나이가 무용가의 스타일을 말한다 - 방희선·안은미·홍승엽

December 23, 2015

金承炫김승현(춤평론)

방희선 안무 『작은 이야기』

 

공자는 마흔 살에 이르러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비로소 뜻을 세웠으며(而立), 마흔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不惑)는 말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흔 살을 ‘불혹’이라고 부른다. 범인(凡人)이 어찌 성인의 경지를 따르랴마는 마흔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기저기에 혹(惑)하기 때문에, 불혹(不惑)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막 불혹에 들어선 방희선, 안은미, 홍승엽 세 무용가가 6월초 잇따라 무대를 가졌다. 강단이 아니라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온 이들은 ‘불혹’의 나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각각의 스타일을 한층 강화시킨 작품을 내놔 주목을 모았다.

 

■방희선의 『작은 이야기』

가장 먼저 무대를 가진 이는 방희선이었다. 방희선은 6월 한 달 동안 매주 월·화요일 밤 8시 서울 강남구 학동4거리의 대형 포장마차 「노는 아이」에서 『마차 안의 작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공연키로 했다. 공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도 팔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오대환, 주용철, 이정영씨 등 방희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나서 음악, 무대미술, 조명을 맡았다.

낮에는 자동차 정비센터, 밤에는 포장마차로 변하는 「노는 아이」는 영업이 변하는 시점에 2시간 정도 무용을 공연하고, 손님들이 그대로 포장마차 집에서 뒤풀이를 한다는 아이디어로 장소를 무료로 제공했다. 포장마차측은 홍보도 되고, 장사도 되는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선뜻 응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곳에서의 공연은 2일과 3일 두 번에 그쳤다. 영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자 분명치 않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단된 것이다. 그러나 방희선은 포기하지 않고 무대를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야외무대로 옮겼다. 날짜도 토·일(6월 14·15·21·22일) 오후 7시로 조정했다. 제목도 『마차 안의 작은 이야기』에서 이제 더 이상 ‘마차 안’이 아닌 만큼 ‘마차 안의’를 빼고 그냥 『작은 이야기』로 바꿨다.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집까지 팔아 장비를 한 달간 임대했는데 그냥 끝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방씨는 “우연히 학동의 포장마차 집에서 술을 먹었는데 공간이 너무 좋았다”며 “좁은 실내 무대를 벗어나 활짝 트인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싶었는데 차질이 생겨 아쉽다. 그러나 백화점 옆 광장도 바닥이 돌바닥으로 좀 더 딱딱해진 것말고는 괜찮은 무대조건”이라고 말했다. 포장마차 「노는 아이」에서의 공연을 리뷰했다.

30여 평쯤 되는 포장마차의 벽을 삼각형의 커다란 천으로 잇대 만든 무대는 범선을 연상케 했다. 좌, 우는 삼각형의 날카로운 끝이 기둥 위쪽으로 매달렸으며, 무대 안쪽은 삼각형의 천을 덧대 등·퇴장의 공간을 마련했다. 삼각 돛의 형상으로 입체감있게 겹겹이 붙어있는 무대는 안쪽에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또는 객석에서 앞으로 전진하는 두 가지 느낌을 동시에 줬다. 무대는 하나의 커다란 범선이었고, 도시는 바다같이 넓은 객석으로 여겨졌다. 선장 방희선은 포장마차 돛단배를 타고 정글 같은 도시의 무대로 항해하는 여전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상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클랙슨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웅성거림 등은 그대로 자연스러운 무대 효과로 작용했다.

암전 상황에서 찢어진 스타킹에 비닐봉지를 잘라 깃털처럼 붙인 무용수들이 마치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등장할 때는 언뜻 뮤지컬 「캐츠」가 연상됐다. 폐차장 구석에서 누가 하늘로 부름을 받아 올라갈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화려한 축제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묘한 흥분감마저 느껴졌다.

춤은 자크 브리엘의 샹송 「느 므 끼뜨 파(Ne me quitte pas·나를 떠나지 마오)」에 맞춰 시작했다. 떠나지 말아달라는 자크 브리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관객들을 찾아 거리로 나온 춤꾼들의 마음처럼 애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옆에 붙어있는 또 다른 포장마차집의 음악소리가 커졌다. 싸구려 댄스메들리였다. 『작은 이야기』의 음악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바뀌었다. 댄스메들리와 교향악 연주가 한바탕 기(氣) 싸움을 벌일 때 문득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 침몰해 갈 때 갑판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때 악사들은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주를 시작했다. 한참을 연주했지만 별로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 악사가 “우리들의 음악을 듣지 않는데 그만 하자”고 했다. 그러자 악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저들이 언제 우리 음악을 들었느냐”며 연주를 계속하는 장면이다.

방희선의 춤은 그런 느낌이었다. 포장마치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싸구려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며 끝없는 욕망의 바다로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호의 승객들과 같은 사람들 속에서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않는 가운데 스스로 만족해 제 한 몸을 불살라 춤을 추는 그런 느낌이었다. 음악이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이어서인지 방희선의 이 같은 삶이 운명처럼, 팔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시의 소란함과의 싸움에서 방희선의 『작은 이야기』가 서서히 마차를 벗어나 거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옆의 병원에서 사람들이 나와 객석을 차지하고 담장 위에 서서 보는 이도 있었다. 무심히 지나는 사람도 하나 둘 서서 사람의 벽을 둘러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장사’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음악도 유랑극단, 추억의 서커스 천막극장 음악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즐거운 리듬으로 바뀌었다. 아코디언 소리에 오토바이 머플러 터진 소리가 잘 어울려 묘한 흥을 돋구었다. 방희선을 비롯한 7명의 무용수와 마임이스트 장성원이 포장마차 바닥을 기고, 뒹굴고, 뛰고, 날며 춤을 췄다.

음악이 잦아들며 방희선이 빨간 투피스를 입고 나와 ‘빈사의 백조’가 연상되는 춤을 췄다. 음악이 끝나고, 영화 필름이 다 돌아간 듯 바퀴 헛도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 처음 시작할 때의 노래 「느 므 끼뜨 파」가 다시 흘러나온다. 노래가사 중에서 ‘라무르 스라 루앙(L’amour sera loin·사랑은 멀리 가고)’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 작품의 표면적 주제는 남녀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 대한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등 보다 더 넓은 범위의 사랑으로 확대된다.

주제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수미쌍관법 형식으로 대충 작품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도 났다. 슬쩍 보니 성균관대 무용과 정의숙 교수가 토끼눈이 돼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던 듯 몇 방울 흐른 것을 얼른 숨기며 훌쩍이는 소리였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만년소녀인 그의 눈물에 대해 묻자 그는 “너무 열심히 해서, 너무 슬퍼서”라고 답했다.

작품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글쓴이의 생각일 뿐이었다. 작품은 관객들의 감동을 자양분 삼아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살아난 방희선과 장성원의 뜨거운 사랑이 포장마차 시멘트바닥에서 펼쳐졌다. 관능적인 둘의 사랑은 10분을 훨씬 넘겨 계속됐다. 프랑스 영화는 흔히 절정에서 끝난다. 그래서 뭔가 미진한 결말을 놓고 ‘프랑스 영화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오래간다. 총에 맞아 곧 숨이 넘어 가는 사람이 할 말은 다하고 죽는다. 그래서 지루하고 진부한 결말에 대해 ‘신파조 한국영화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빈사의 백조’까지는 깔끔한 프랑스영화였는데 ‘부활한 백조’부터는 한국영화 같았다. 지루할 정도로 끈질기게 관능적 사랑을 나누더니 급기야 장성원은 통곡하기까지 했다. 소리가 없는 무브먼트를 주요 표현수단으로 쓰는 마임배우이며 무용가가 큰소리로 통곡을 하는 것을 보니 좀 어색했다. 배우가 울 때 관객은 보통 울지 않는다. 배우가 슬픔을 웃음으로 버무려 낼 때, 그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조금 있다가 또 필름 다 돌아간 영사기 소리가 나고서야 작품이 끝났다. 2부쯤으로 보이는 이 부분에서 뱀을 다 그려놓고, 심심해서 다리를 그렸다는 사족(蛇足)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족’에도 불구,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진정성이 강했다. 그것이 관객을 감동시켰다. 평이한 음악과 다이내믹하면서도 관능적인 고난도 춤사위는 관객들을 충분히 즐겁게 했다. 특히 장성원의 과감한 액션춤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냈다. 시멘트바닥에 몸을 쾅쾅 내던질 땐 관객들이 모두 움찔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춤을 췄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장성원은 올 초 문예진흥원 주최 「입춘대길」이라는 퍼포먼스에 출연하면서 방희선을 만났다. 이들은 당시 『마차 안의 작은 이야기』 공연을 약속했고, 장성원은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방씨와의 작업이 너무 흥미가 있어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사스(SARS)가 창궐하는 홍콩을 지나 서울로 왔다”며 “이 작업은 ‘떠나버린 관객을 찾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객을 찾아서’”라고 말했다.

방씨는 “순수예술이건 대중예술이건 관계없이, 존재가치나 깊이에 관계없이 팔아야 대박잔치인 우리 문화계 상식에 내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을 팔아 무료 거리공연을 나온 나는 바보중의 바보지만 행복하다. 조금은 늦게, 조금은 모자라게 사람들과 만나며 차이점이 차별점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비춰지는 사회에서 약간은 바보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안은미 안무 『플리즈 킬 미(Please kill me)』

 

■안은미와 어어부프로젝트 「2003 안은미 춤·서울 Please」

다음은 안은미다. 안은미는 인디록밴드 어어부프로젝트와의 작업 10년을 기념, 6월 5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안은미와 어어부프로젝트-2003 안은미 춤·서울 Please」를 공연했다. 도발과 파격의 무용가로 꼽히는 안은미가 5년 만에 내놓는 솔로춤 무대이기에 특히 관심을 끌었다. 작품은 『플리즈 킬 미』(Please kill me·제발 나를 죽여줘), 『플리즈 포기브 미』(Please forgive me·제발 나를 용서해줘), 『플리즈 룩 앳 미』(Please look at me·제발 날 좀 봐줘) 등 3부로 구성됐다. 각 부의 앞에 작품의 어어부의 콘서트가 20∼30분씩 공연됐다.

무대는 하얀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됐다. 객석으로 열려진 ‘ㄷ’자 벽구조에 강선을 차례로 연결해 집게로 A4용지를 마치 타일처럼 매달았다. 천장에는 사방 4∼5m쯤 돼 보이는 격자망에 수혈용 피봉지를 걸어놨다. 안은미가 『하얀 무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 더욱 철저하게 집착하는 ‘피’의 이미지다. 이 피에는 여성성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하는 ‘생리혈’에서부터 시작해, 출산과 함께 터져 나오는 모성의 ‘피’, 남성들로부터 당하는 사회적 차별에 의해 당한 상처에서 흐르는 ‘피’ 등 여성의 몸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피다. 이 ‘피의 이미지’는 이 3부작을 관통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 무대에 안은미는 검은 모자에 검은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무대의 색은 흑과 백, 빨강 세 가지 색뿐이다. 흑과 백이 무채색으로 색이 아니라고 할 때 무대의 색은 빨간색 하나인 셈이다.

섬뜩한 느낌의 붉은 피 봉지 아래 가슴이 깊이 패인 검은 수트를 입고 등장한 안은미는 거만했다. 왼손은 주머니에 찌르고 오른손만 움직여 까닥까닥 인사했다. 언뜻언뜻 보이는 가슴은 세상을 유혹하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손의 느낌은 조막손이었다. 애써 거만하게 보이려 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약한 억눌린 질곡의 여성의 모습이 느껴진다. 내부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외부적으로 더 강하게 보이려는 콤플렉스도 느껴진다. 한참을 거만하게 걷다가 왼손을 꺼내면서 무대는 굿판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모자를 벗어 예의 도전적인 대머리를 보이고, 첫 장면부터 상의를 벗어 던졌다. 보통 보일 듯 말 듯 관능의 긴장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과감히 벗어 던졌던 것과 달리 첫 부분부터 도전적으로 시원하게(?) 벗어 젖혔다. 세상에 대한 도전,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는 자신감의 의도로도 보인다. 그러나 조막손에서 피가 흐른다. 여기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함께, 또 그 강도에 비례해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한 한계성도 느껴진다. 현실에 순응,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를 거부하지만, 신데렐라의 행운을 빼앗기 위해 유리구두를 억지로 신으면서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른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의 발과 같은 느낌이다. 안은미는 피 흐르는 손으로 제 목을 조르고, 피는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다. 세상과 싸우다 상처입고 피 흘리며 쓰러진 안은미가 ‘제발 죽여달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2부 『플리즈 포기브 미』는 흑과 백의 대조였다. 전면 무대 벽에 두 개의 창이 열려 위쪽에서는 수녀가, 아래쪽에는 소복을 한 처녀귀신의 모습이 증명사진처럼 박혀 있었다. 수녀역은 깜찍한 동요 「예솔이」를 불렀던 이자람이었다. 지금은 동편제 전통을 잇는 명창으로 자리매김한 이자람은 그레고리안스타일의 스캣송을 했고, 처녀귀신은 국악 가곡을 하는 정마리가 맡아 맑은 음색의 귀곡성을 내 이채로웠다. 무대 바닥에는 길이 3m쯤 되는 커다란 검은 동그라미가 놓였다. 그 위에 하얀 속치마를 입은 안은미가 목에 붕대를 매고 양팔은 결박된 채 아기를 낳는 산모의 자세로 누웠다. 안은미는 검은 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여기에 맞춰 스캣송과 귀곡성은 높고 낮게 변화했다. 처음에는 손발로만 치다가 온 몸으로 구르면서 ‘발광’을 거쳐 ‘접신’의 경지에 이르면서 기어코 원을 벗어났다. 목 졸라 죽고 싶었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몸을 던진 싸움의 승리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을 용서해달라는 걸까. 자살하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려했던 것, 이 야만의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살려고 했던 것 등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 『플리즈 룩 앳 미』에서 안은미는 제목의 뜻을 강조하듯 우스운 분장으로 등장했다. 눈꺼풀 위에 파란색과 흰색으로 마스카라를 하며 웃는 눈을 그려놨다. 이 작품에서 빨간 색 외에 처음으로 등장한 유채색이다. 그러나 빨간색 옷을 입어 붉은색에 대한 상징은 가장 강하게 확대됐다.

어어부의 노래로 세 도막으로 나뉘어진 안은미의 이번 공연은 서로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끝말잇기처럼 내용의 연결이 보인다. 첫 장에서의 목졸음이 두 번째 장에서 목에 감은 붕대로 나오고, 두 번째 장에서의 영광의 탈출이 자유스럽고 즐거워 보이는 세 번째 장의 의상과 분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눈꺼풀 위에 파란색으로 강제로 그린 웃음만큼이나 그 자유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눈을 감을 때는 우습지만 뜨고 있으면 안타깝다. 그 위로 피가 쏟아졌다. 머리 위에 놓인 피봉지에서 언젠가는 피가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쏟아진 것이다. 70년대 말 공포 영화 「캐리」의 마지막 살육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고교생들이 못생긴 캐리를 메이퀸으로 뽑아 놓고 돼지피를 쏟아 부어 망신을 주는 못된 장난을 벌이다가 캐리의 초능력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참혹한 장면이다. 위선적인 느낌의 분장을 한 안은미에게 돼지피가 쏟아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는 여성의 자유에 대한 남성위주 사회의 폭력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당초 이 부분이 『플리즈 돈 크라이』(Please don’t cry·제발 울지마)라는 제목으로 구상됐던 것은 보다 직접적인 설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크라이’라는 것이 자신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신파조라고 생각했는지 안은미는 ‘웃음으로 위장된 울음’으로 ‘봐주길’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캐리와 같이 공포스런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반신데렐라적 여성성에 대한 동의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은미는 공연에 앞서 “사람 몸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긴장상태에서 나오는 파장, 에너지가 증폭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춰 조용한 상태에서의 떨림, 정지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점점 죽어 가는 이미지의 춤”이라며 “마흔 살의 안은미에게 남아있는 기름기, 영양분이 무엇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머리로 연습한 것을 가슴의 파장으로 확대, 무대에서 몸을 통한 즉흥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었다.

안은미는 무대에서 자신의 공언대로 마흔 살 안은미에게 남아있는 기름기와 영양가를 있는 대로 쥐어짜 내는 것으로 보였다.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과 무대미학에서 펼쳐진 잔인한 ‘피의 향연’은 오랜 고민을 통해 익은 강렬한 주제에 걸 맞는 파격적인 그림들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안은미의 작업의 결정판이라는 생각보다는 관성과 타성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때문에 이 작품을 본 한 춤평론가는 “갈 때까지 간 느낌”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파격과 도발의 무용가 안은미의 ‘불혹’은 ‘갈 때까지 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바라보는 또 다른 모색’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는 그것을 찾기 어려웠던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무대의 가득한 피는 매너리즘에 빠진 홍콩 느와르 영화의 헤모글로빈이라는 생각도 든다.

 

홍승엽 안무 댄스시어터온의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

 

■홍승엽댄스시어터온의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

그림자극에서 모티브를 얻은 홍승엽의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6월 6·7일 LG아트센터)는 공학도 출신 무용가가 만든 작품답게 비인간적일 정도로 명쾌하고 깔끔하며 즐거운 무대였다.

이 작품은 1부 『쉐도우 카페(Shadow Cafe)』와 2부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로 구성되어 있다. 당초에는 1부가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 2부가 『쉐도우 카페』였는데 순서가 바뀌었다.

『쉐도우 카페』는 그림자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고독한 관능으로 보였다. 탄산음료병을 따는 소리와 싸하고 올라오는 기포소리에 맞춰 흑과 백이 대조를 이룬 체스판과 같은 바닥에서 무용수들은 자신의 그림자와 춤을 췄다. 그림자와 추는 탱고, 브레이크, 힙합 등은 고독감과 함께 묘한 관능적인 느낌을 줬다. 고릴라들의 춤은 즐거운 익살을 선사했다. 그러나 그 익살도 기계적인 무대와 너무 달콤한 음악으로 인해 그로테스크한 고독감으로 이어졌다.

카페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생각, 한 인간 속에 겹겹이 싸여져있는 다중 인격 등을 그림자를 통해 미학적으로 벗겨 내려한 홍승엽의 시도는 깔끔했다. 특히 그림자극처럼 몸통을 중심으로 춤을 ‘통’으로 만들어내며 손과 발을 장식적으로 사용한 춤 구성은 특이했다. 프랑스 태양극단의 아리안느 므뉘스킨은 「제방의 북소리(La tambour de la digue)」에서 일본 전통극 「분라쿠」 방식을 차용, 사람이 인형을 대신하는 무대기법을 사용해서 큰 박수를 받았었다. 홍승엽의 그림자극 춤은 『제방의 북소리」의 방법론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시도로 생각된다.

2부는 실제 그림자극을 한편 상영하고, 그림자가 무대로 나와 춤을 추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1부 『쉐도우 카페』가 다양한 영혼의 색깔이라면, 2부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는 다양한 껍질 벗기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쌍둥이를 처음 발견한 신기함으로 그림자와 인간의 관계를 그린 이광석과 이진우의 서커스와 같은 고난도 테크닉은 인상적이었다. 김선이의 솔로는 영혼의 유영과 같은 부드러운 흔들림을 보여줬다. 고릴라들과 해바라기 등 인간의 실존적 업보들을 싱코페이션에 실어 당기는 맛은 소다수 거품처럼 시원, 쌉쌀했다. 정확한 계산에 의한 잘 짜여진 도시적 감수성은 홍승엽 특유의 우아한 당디즘(dandisme)이 나름의 세계로 굳어졌음을 보여준다.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도 홍승엽 춤의 미덕이다.

그러나 만화적 상징과 다소 너무 쉬운 듯한 이미지가 키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디는 19세기에 이미 “아름다운 벨칸토는 싫다”고 했다. “현대극은 정열과 표정이 숨쉬는 그런 가수를 원한다”며 「아이다」와 「라 트라비아타」를 만들었다. 현대춤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볍고 재미있는 메시지만이 아닌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객석으로 전달돼야할 많은 에너지가 오케스트라 피트를 건너지 못하고 무대 속에서 흩어져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장에서 너무 많은 이미지를 보여줘 결론이 주는 임팩트를 약화시킨 것 같다. 커튼콜에 인사를 하러 나와 우수에 젖은 휘파람 소리에 맞춰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어깨춤을 추며 무대 옆으로 사라지는 홍승엽의 수줍음은 그의 작품의 아름다운 장점인 동시에 뭔가가 조금 허전한 그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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